제5부 제4장 우리는 정말 몸 안에서 살아가는가?

1.침대 위의 몸과 꿈속의 몸

앞장에서 우리는 꿈속의 사과를 따라가 보았다.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그 사과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사라진 것은 사과만이 아니었다.

사과를 들고 있던 손도 사라졌다.

사과를 먹던 입도 사라졌다.

사과를 바라보던 눈도 사라졌다.

꿈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던 몸도 함께 사라졌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사실이 있다.

우리는 사과가 사라진 것은 쉽게 이해한다.

하지만 그 사과를 먹고 있던 몸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꿈속에서도 우리는 분명 하나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

걷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고,

말하기도 하고,

먹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그 몸은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이 진짜 몸이라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의 몸은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현실의 몸은 침대 위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

손도 움직이지 않았다.

입도 움직이지 않았다.

눈도 감겨 있었다.

그렇다면 꿈속에서 움직이던 몸은 무엇이었을까?


이 질문을 조금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 보자.

우리가 현실에서 사과를 본다고 하자.

사과에 반사된 빛은 눈으로 들어온다.

그 빛은 망막에서 전기 신호로 바뀐다.

전기 신호는 뇌로 전달된다.

그리고 우리는 사과를 본다고 말한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의 경험 과정이다.

그런데 꿈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난다.

꿈속에는 실제 사과가 없다.

빛도 없다.

망막으로 들어오는 영상도 없다.

현실의 눈도 사용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과를 본다.

사과를 만진다.

사과를 먹는다.

심지어 맛까지 느낀다.

현실에서는 빛과 눈과 신경과 뇌의 과정을 거쳐 경험하던 세계가,

꿈에서는 그 모든 과정 없이도 하나의 완전한 세계로 나타난다.

더 놀라운 것은 몸이다.

꿈속에서도 우리는 몸을 가지고 있었다.

그 몸으로 걷고,

손을 움직이고,

세상을 바라보고,

사과를 먹었다.

그러나 현실의 몸은 단 한 번도 침대를 떠난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꿈속의 몸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잠에서 깨어난 지금도 우리는 눈을 감으면 그 장면을 다시 떠올릴 수 있다.

꿈속의 정원이 다시 나타난다.

사과가 다시 보인다.

꿈속의 내가 다시 움직인다.

이번에도 외부에는 아무것도 없다.

빛도 없다.

사과도 없다.

그런데 의식은 다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낸다.

우리는 이것을 상상이라고 부른다.

기억이라고 부른다.

꿈이라고 부른다.

이름은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은 하나이다.

의식은 외부의 물질이 없어도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현실에서는 왜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일까?

왜 빛이 필요하고,

왜 눈이 필요하며,

왜 신경과 뇌를 거쳐야 하는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물질 세계를 실제처럼 경험하도록 설계된 하나의 질서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구가 엄청난 속도로 자전하고 공전하는 동안에도 그것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경험하는 물질과 공간도

의식이 그것을 하나의 현실로 경험하도록 구성된 방식일 수 있다.

꿈과 상상은 의식이 스스로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현실은 그 위에 더욱 정교한 질서가 더해진 경험의 세계일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몸’이라고 부르는 존재도,

의식이 이 세계를 살아가기 위해 사용하는 하나의 인터페이스는 아닐까?

이 질문이 앞으로의 여정을 이끌게 될 것이다.

2. 현실의 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꿈속에서는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사과도 있었고,

나무도 있었으며,

하늘도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바라보는 나의 몸도 있었다.

그러나 현실의 몸은 침대 위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렇다면 현실에서는 어떨까?

우리는 지금 눈앞의 세상을 보고 있다.

나무를 본다.

사람을 본다.

하늘을 본다.

몸을 본다.

우리는 당연히 그것들이 밖에 그대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의 의식에 도달하기까지는 하나의 과정이 있다.

나무에서 반사된 빛이 눈으로 들어온다.

그 빛은 망막에서 전기 신호로 바뀐다.

전기 신호는 시신경을 따라 뇌로 전달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 비로소 나무를 본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직접 보는 것은 바깥의 나무가 아니다.

빛이 신경을 거쳐 의식에 나타난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런데 꿈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난다.

꿈속의 사과는 실제 사과가 아니었다.

빛도 없었다.

망막도 사용되지 않았다.

전기 신호를 전달할 현실의 눈도 작동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현실과 거의 구별되지 않는 사과를 보았다.

나무를 보았다.

사람을 만났다.

세상을 경험했다.

꿈속의 몸도 현실처럼 움직였다.

현실에서는 빛과 눈과 신경이라는 과정을 거쳐 의식에 세계가 나타난다.

반면 꿈에서는 그러한 과정 없이도 의식은 하나의 완전한 세계를 만들어 낸다.

잠에서 깨어난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눈을 감아 보자.

조금 전의 풍경을 떠올릴 수 있다.

어제 만난 사람의 얼굴도 생각난다.

꿈속의 사과도 다시 떠오른다.

이번에도 빛은 없다.

실제 사과도 없다.

그러나 의식은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낸다.

꿈,

기억,

상상.

이름은 서로 다르지만,

모두 의식 안에서 만들어지는 하나의 세계이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해 보자.

현실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단순히 물질 그 자체일까?

아니면 의식이 경험하도록 정교하게 구성된 하나의 세계일까?

꿈은 의식이 외부의 자연 없이도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현실은 그 위에 빛과 신경과 몸이라는 질서를 더하여,

우리가 하나의 공통된 세계를 살아가도록 구성된 경험의 장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몸은 무엇인가?

몸은 나 자신일까?

아니면 의식이 이 세계를 경험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하나의 인터페이스일까?

3. 우리는 정말 바깥세계를 보고 있는가?

지금까지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확인했다.

첫째,

꿈속에서도 하나의 세계가 완전하게 만들어질 수 있었다.

둘째,

그 세계 안에는 사과도 있었고,

나무도 있었으며,

몸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의식 안에서 나타난 세계였다.

그렇다면 이제 현실을 다시 바라보자.

우리는 지금 눈앞의 세상을 ‘밖에 있는 세계’라고 생각한다.

산은 저 멀리 있고,

하늘은 머리 위에 있으며,

사람은 내 앞에 서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나는 여기 있고,

세상은 저기 있다.’

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세계는 어디에서 펼쳐지고 있을까?

우리는 나무 자체를 직접 보는 것이 아니다.

빛을 통해 전달된 정보를 의식에서 경험한다.

사람의 얼굴도,

푸른 하늘도,

별도,

내 몸도,

모두 의식 안에서 하나의 경험으로 나타난다.

꿈에서는 이것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꿈속의 세계는 모두 의식 안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게 느껴진다.

왜일까?

현실은 꿈처럼 갑자기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 본 산이 내일도 있고,

어제 살던 집이 오늘도 있으며,

계절도 일정한 질서를 따라 반복된다.

이러한 지속성과 일관성 때문에 우리는 현실을 외부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세계라고 믿게 된다.

그러나 의식이 경험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는,

꿈과 현실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꿈에서는 의식이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낸다.

현실에서는 정교한 질서를 가진 하나의 세계가 의식 안에서 경험된다.

차이는 세계가 의식 안에 나타난다는 점이 아니라,

그 세계가 얼마나 안정되고 지속되는가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을 객관이라 부르고,

꿈을 주관이라 부른다.

하지만 의식의 입장에서 보면,

둘 다 의식 안에서 펼쳐지는 경험이다.

주관과 객관은 서로 다른 두 공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의식 안에서 서로를 마주하는 두 모습일 수도 있다.

우리가 현실을 외부라고 느끼는 것은,

그렇게 경험하도록 우리의 인식이 설계되어 있기 때문일 수 있다.

그 덕분에 우리는 하나의 세계를 함께 살아가고,

배우고,

사랑하고,

문명을 만들 수 있었다.

만약 세상이 언제나 꿈처럼 흔들리고 끊어진다면,

우리는 오늘과 내일을 연결하며 살아갈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현실은 안정된 질서를 가진 하나의 경험 세계로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그러나 언젠가 꿈에서 깨어나듯,

우리의 의식도 더 깊은 차원으로 깨어나는 순간이 올 수 있다.

그때 우리는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믿었던 현실을,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지도 모른다.

인류는 오랫동안 물질을 연구해 왔다.

이제는 의식을 연구해야 할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의식을 이해하는 만큼,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도 함께 성장하게 될 것이다.

4.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있는가?

지금까지 우리는 몸을 살펴보았다.

꿈속의 몸도 보았고,

현실의 몸도 살펴보았다.

그리고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가 의식 안에서 나타난다는 가능성도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면 이제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도대체 ‘나’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늘 몸을 가리키며

‘이것이 나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꿈속에서도 나는 몸을 가지고 있었다.

현실에서도 몸을 가지고 있다.

상상 속에서도 몸을 떠올릴 수 있다.

기억 속에서도 나는 존재한다.

몸의 모습은 계속 달라진다.

어린 시절의 몸도,

지금의 몸도,

노년의 몸도 모두 다르다.

그러나 그 몸들을 모두 ‘나의 몸’이라고 부르는 존재는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변하는 것은 몸이고,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평생 몸의 변화를 경험하면서 살아간다.

머리카락이 자라고,

피부가 변하고,

세포는 끊임없이 교체된다.

과학은 우리 몸의 대부분의 세포가 시간이 지나면서 새롭게 바뀐다고 말한다.

몸은 계속 변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같은 ‘나’라고 느낀다.

무엇이 이 동일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몸일까?

아니면 몸을 경험하는 의식일까?

꿈에서 깨어나면 꿈속의 몸은 사라진다.

그러나 ‘깨어난 나’는 남아 있다.

상상을 멈추면 상상 속의 몸은 사라진다.

그러나 상상을 멈춘 것을 아는 ‘나’는 남아 있다.

기억이 떠올랐다가 사라져도,

그 기억을 바라보는 ‘나’는 여전히 존재한다.

항상 남아 있는 것은 몸이 아니다.

세계를 경험하고,

몸을 경험하고,

꿈과 현실을 모두 경험하는 의식이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까지 몸을 ‘나’라고 부르며 살아왔지만,

실제로는 몸을 사용하는 의식을 ‘나’라고 불러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순간,

우리가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도,

삶을 바라보는 방식도,

죽음을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지기 시작한다.

5. 우리는 왜 그것을 모르고 살아가는가?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몸을 ‘나’라고 배운다.

거울을 보며

‘이것이 너다.’

라는 말을 듣고 자란다.

학교에서도 몸을 배운다.

생물학도 몸을 연구한다.

의학도 몸을 치료한다.

그래서 우리는 몸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정작 몸을 경험하는 의식에 대해서는 거의 배우지 못했다.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면서도

무엇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묻지 않는다.

생각하면서도

무엇이 생각하고 있는지를 묻지 않는다.

꿈을 꾸면서도

누가 그 꿈을 경험하는지를 묻지 않는다.

그것이 너무도 당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당연한 것이

가장 깊은 질문일 수 있다.

옛사람들은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믿었다.

매일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 언제나 진실은 아니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몸이 곧 나라고 믿는다.

세상이 내 밖에 있다고 믿는다.

물질이 가장 먼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 역시,

우리가 그렇게 경험하도록 살아왔기 때문은 아닐까?

인류는 지금까지 물질의 세계를 연구하는 데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물질을 경험하는 의식을 바라볼 때가 되었다.

의식을 이해하는 순간,

몸도 새롭게 보이고,

세상도 새롭게 보이며,

인간 자신도 전혀 다른 존재로 보이기 시작한다.

어쩌면 인류가 아직 의식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은,

의식이 존재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늘 너무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눈은 모든 것을 보지만,

자기 자신을 직접 볼 수는 없다.

의식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의식은 모든 경험의 출발점이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가장 늦게 발견되는 실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는 언제나

보이지 않던 것을 하나씩 발견해 온 역사였다.

공기를 이해했고,

중력을 이해했고,

전기를 이해했으며,

원자를 이해했다.

다음 차례는 의식일지도 모른다.

의식은 상상이 아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6. 의식도 성장하는가?

우리는 몸이 성장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갓 태어난 아이는 작고 연약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키가 자라고,

근육이 발달하며,

몸은 성인이 된다.

그런데 몸만 성장하는 것일까?

의식도 성장한다.

태어난 아기는 자신의 이름도 모른다.

언어도 모른다.

세상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마치 처음 전원을 켠 컴퓨터처럼,

모든 가능성은 있지만 아직 아무것도 경험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나 아이는 자라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질문하고,

실패하고,

깨달으며 의식을 넓혀 간다.

몸이 자라는 동안,

의식도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한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인류 전체도 같은 길을 걸어왔다.

과거에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었다.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생각했다.

번개는 신의 분노라고 여겼고,

보이지 않는 세균의 존재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인류의 의식은 끊임없이 성장했다.

새로운 질문을 던졌고,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으며,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바꾸어 왔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쩌면 지금의 인류도,

의식에 대해서는 아직 어린아이와 같은 단계에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물질을 연구하는 방법은 배웠다.

그러나 의식을 연구하는 방법은 이제 막 시작하고 있다.

과거 사람들에게

‘지구는 움직이고 있다.’

는 말이 믿기 어려웠던 것처럼,

오늘날에는

‘의식이 현실을 경험하게 하는 근본 조건이다.’

라는 생각이 낯설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는 언제나

상식이라고 믿었던 것이 더 큰 이해 앞에서 바뀌어 온 역사였다.

의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의식은 상상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읽고,

의미를 이해하며,

질문을 던지고 있는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의식을 더 깊이 이해하는 날,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도,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도,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방식도 함께 성장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인류의 다음 진화는

몸의 진화가 아니라,

의식의 진화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진화는 새로운 기관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늘 함께 있었지만 보지 못했던 의식의 본질을 깨닫는 순간부터 시작될 것이다.

7. 의식이 성장하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우리는 평생 몸을 성장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하고,

병을 치료하며,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려고 애쓴다.

그것은 몸이 우리의 삶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식은 어떨까?

의식도 성장할 수 있다면,

그 성장 역시 우리의 삶을 바꾸지 않을까?

사람은 자신이 아는 만큼 세상을 본다.

같은 하늘을 바라보아도,

어떤 사람은 단순한 푸른 하늘을 본다.

어떤 사람은 대기의 원리를 생각한다.

또 어떤 사람은 우주의 질서를 떠올린다.

하늘은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바라보는 의식이다.

세상은 언제나 의식의 깊이만큼 보인다.

그래서 의식이 성장한다는 것은,

지식을 더 많이 외우는 것이 아니다.

세계를 이해하는 깊이가 달라지는 것이다.

몸을 ‘나’라고 믿던 사람은,

몸이 늙는 것을 자신의 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의식을 ‘나’라고 이해하기 시작하면,

삶과 죽음,

존재와 세계를 바라보는 기준 자체가 달라진다.

인류의 문명도 결국 의식의 성장으로 이루어졌다.

불을 사용하게 되었고,

문자를 만들었으며,

과학을 발전시켰다.

모든 변화는 먼저 의식에서 시작되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류의 다음 도약은

더 빠른 기계를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의식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의식을 이해하는 사람은

세상을 새롭게 보게 된다.

자신도 새롭게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타인도,

자연도,

우주도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어쩌면 인간이 진정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몸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의식이 자신의 본질을 깨닫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 순간,

우리는 지금까지 현실이라고 믿었던 세계를

전혀 다른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시선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묻는 또 하나의 질문으로 우리를 이끈다.

4장 결론

이 책은 하나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안한다.

우리가 공기라고 부르는 이 공간,

대기권을 넘어 끝없이 펼쳐진 우주 공간,

그 모든 배경이 단순한 빈 공간이 아니라,

거대한 의식의 장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다.

컴퓨터가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네트워크 위에서 작동하듯,

우리 역시 하나의 거대한 의식장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인간의 몸은 하나의 단말기와 같다.

의식장은 네트워크이고,

인간의 몸은 그 네트워크에 연결된 하나의 PC와 같다.

지금 이 순간 지구에는 약 80억 명의 사람이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80억 개의 몸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80억 개의 단말기를 통하여 하나의 거대한 의식장이 스스로를 경험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그 의식을 통해

하늘을 보고,

별을 보고,

사람을 만나며,

세계를 경험한다.

그러나 의식이 전혀 없는 존재가 있다면 어떨까?

그 존재에게는

푸른 하늘도,

붉은 노을도,

음악도,

사랑도,

아름다움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물질은 있어도,

그것은 누구에게도 ‘세계’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세계는 단순한 물질의 집합이 아니라,

의식을 통해 경험될 때 비로소 하나의 세계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단순한 물질세계라기보다,

의식이 드러나는 정신의 세계라고도 볼 수 있다.

이것은 물질을 부정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물질을 더 큰 틀에서 다시 해석하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의식이 물질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반대로 질문해 볼 수 있다.

혹시 물질세계가

의식이라는 더 큰 토대 위에서 펼쳐지는 경험의 세계는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인간은 더 이상 우연히 만들어진 물질 덩어리가 아니다.

인간은 거대한 의식장 안에서

세계를 경험하고,

세계를 이해하며,

스스로를 깨달아 가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철학은 하나로 이어지고,

과학은 새로운 질문을 만나며,

종교는 새로운 의미를 얻기 시작한다.

이 책의 모든 이야기는 바로 그 한 가지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정말 물질이 먼저인 세계인가.

아니면 의식이 먼저인 세계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이,

이 책의 다음 이야기에서 계속될 것이다.

📌 2분 영상 설명란

우리는 정말 몸 안에서 살아가는가?

우리는 모두 몸 안에 ‘나’가 살고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꿈속에서도 우리는 또 하나의 몸으로 걷고, 보고, 말하고, 느낍니다.

그렇다면 정말 ‘나’는 몸 안에 있는 존재일까요?

아니면 몸을 통해 세상을 경험하는 의식일까요?

이번 2분 영상에서는 가장 당연하게 믿어 왔던 몸과 의식의 관계를 새로운 시각에서 질문해 봅니다.

📌 10분 영상 설명란

우리는 정말 몸 안에서 살아가는가?

우리는 몸이 곧 ‘나’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꿈속에서도 우리는 몸을 가지고 세상을 경험합니다.

현실에서는 빛과 눈, 신경과 뇌를 통해 세계를 경험하지만,

꿈에서는 그 모든 과정 없이도 하나의 완전한 세계가 펼쳐집니다.

그렇다면 몸은 ‘나’일까요?

아니면 의식이 사용하는 하나의 인터페이스일까요?

이번 영상에서는 꿈과 현실, 몸과 의식의 관계를 따라가며 우리가 누구인지 다시 질문합니다.

📌 20분 Deep Audio 설명란

우리는 정말 몸 안에서 살아가는가?

우리는 평생 몸 안에 ‘나’가 살고 있다고 믿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꿈속의 몸은 현실의 몸과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합니다.

기억 속의 몸도,

상상 속의 몸도,

모두 의식을 통해 경험됩니다.

그렇다면 몸은 의식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요?

아니면 의식이 몸을 하나의 인터페이스로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번 Deep Audio에서는 꿈과 현실, 주관과 객관, 몸과 의식의 관계를 따라가며 인간 존재를 새로운 시각에서 탐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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