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오늘날 계시를 아는 사람이 나타날 수 있는가?

계시는 어떻게 인간에게 전달되는가?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은 성경을 읽는다.

교회를 다니고,

신학교를 다니고,

평생 성경을 연구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천국이 무엇인지 말이 다르다.

구원이 무엇인지 말이 다르다.

생명나무가 무엇인지 말이 다르다.

선악나무가 무엇인지 말이 다르다.

뱀이 무엇인지도 다 다르다.

목사마다 다르고,

신학자마다 다르고,

교단마다 다르다.

왜 그럴까?

성경이 어려워서일까?

아니다.

성경은 원래부터 감추어진 책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처음부터 비밀과 비유였다

시편 78편은 말한다.

하나님께서 창세부터 모든 것을 비밀과 비유로 말씀하셨다고.

예수 역시 마태복음 13장에서 말한다.

천국은 비밀이라고.

그래서 비유로 말씀하신다고.

그러므로 성경은 처음부터 문자로 읽어서는 알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생명나무도 비유다.

선악나무도 비유다.

뱀도 비유다.

빛도 비유다.

해와 달과 별도 비유다.

문자는 누구나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비유의 뜻은 아무나 알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경을 읽으면서도 성경을 모르고 있었다.


계시는 왜 아무도 알 수 없었는가?

계시록 5장으로 가 보자.

하나님의 오른손에 한 권의 책이 있다.

그 책은 안팎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일곱 인으로 봉함되어 있다.

그리고 선언이 나온다.

천상천하에

그 책을 펴거나

그 책을 볼 자가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은 무엇인가?

인류 역사 속에서

누구도 스스로 성경의 비밀을 완전히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아무리 공부해도 안 된다.

아무리 연구해도 안 된다.

왜?

봉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계시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계시를 어렵게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보자.

내가 검은 자루 하나를 가지고 있다고 하자.

그 안에 밤 하나를 넣었다.

그리고 입구를 단단히 묶어 놓았다.

이제 사람들에게 묻는다.

“이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누가 알 수 있을까?

아무도 모른다.

그게 어려워서 모르는 것이 아니다.

안 보여 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자루를 열어서 보여 준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어린아이도 안다.

밤이 들어 있다는 것을.

계시도 똑같다.

계시는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감추어진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래서 계시는 연구의 결과가 아니라

드러남의 결과다.


계시는 어떻게 전달되는가?

계시록 1장 1절은

계시가 전달되는 과정을 정확히 보여 준다.

하나님

↓

예수 그리스도

↓

천사

↓

종

↓

교회

↓

세상

이다.

계시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위에서 아래로 전달되는 것이다.

그래서 계시록 5장의 봉함된 책도

스스로 열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께서 예수께 주신다.

예수께서 천사에게 주신다.

천사가 사람에게 전한다.

이것이 계시의 구조다.


왜 십승자가 등장하는가?

계시록 12장에는 용과의 전쟁이 등장한다.

그 용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다.

육천 년 동안 세상을 지배해 온

거짓과 사망의 세력을 상징한다.

그리고 거기서

이기는 자가 등장한다.

십승자가 등장한다.

왜 십승자인가?

용의 사상을 이겼기 때문이다.

사망의 사상을 이겼기 때문이다.

세상이 당연하다고 믿던 생각을 이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시록은

그 이기는 자에게 약속한다.

생명나무를 주리라.

흰 돌을 주리라.

새 이름을 주리라.

만국을 다스릴 권세를 주리라.

결국 봉함된 비밀은

이기는 자를 통해 열리게 되는 것이다.


한 사람에게서 시작된다

예수도 처음에는 열두 제자에게 말씀을 전했다.

열두 제자는 다시 세상으로 나갔다.

계시도 같다.

먼저 한 사람이 받는다.

그 사람이 깨닫는다.

그 사람이 전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인다.

계시록에서는 열두 지파가 세워진다.

각 지파마다 12,000명.

총 144,000명이 된다.

그리고 흰 무리가 모인다.

왕이 세워지고

백성이 모이고

나라가 세워진다.


격암유록도 같은 구조를 말한다

격암유록은

도통군자,

십승자,

십승지,

각설십이국을 말한다.

요한계시록은

이긴 자,

열두 지파,

144,000,

시온산을 말한다.

표현은 다르다.

그러나 구조는 놀랍도록 비슷하다.

그래서 격암유록을 해석하면 계시록이 보이고,

계시록을 해석하면 격암유록이 보인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왜 오늘날 이런 이야기가 가능한가?

만약 계시가 없었다면

사람은 계속 추측만 했을 것이다.

천국이 무엇일까?

생명나무가 무엇일까?

뱀이 무엇일까?

구원이 무엇일까?

그러나 계시가 시작되면 달라진다.

봉함된 자루가 열리기 시작한다.

감추어진 것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계시록이라는 이름 자체가

“열어 보여 준다”는 뜻을 가진다.

반대로 계시되기 전까지는

묵시다.

입을 다물고 있는 상태다.

천상천하 아무도 모른다.


계시의 최종 목적

계시의 목적은 단순히 미래를 알려 주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죽음의 사상에서

생명의 사상으로.

욕심의 사상에서

하늘의 사상으로.

옛 사람에서

새 사람으로.

그래서 계시록 21장은 선언한다.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 없고

아픈 것이 없고

곡하는 것이 없다고.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한다고.

결국 계시란

숨겨진 지식을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열어 주는 것이다.


결론

지금까지 성경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 없었던 이유는

사람들이 어리석어서가 아니다.

성경이 원래 봉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봉함된 책은 언젠가 열린다.

계시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감추어진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검은 자루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아무도 몰라도,

열어 보여 주는 순간

누구나 알게 되는 것처럼.

그래서 계시는 연구의 끝이 아니라

드러남의 시작이다.

그리고 성경은 말한다.

그날이 오면

감추어진 것이 드러나고,

봉함된 것이 열리며,

묵시는 계시가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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