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이라는 투명한 안경으로 다시 바라보는 시간·공간·물질과 우주
의식장이란 무엇인가

프롤로그|우리는 평생 단 한 번도 의식을 벗어난 적이 없다
아침에 눈을 뜬다.
방이 보인다.
창밖의 하늘이 보이고,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늘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몸을 움직인다.
하루 동안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사물을 보고, 듣고, 만지고, 판단한다.
그리고 밤이 되면 다시 잠자리에 든다.
다음 날 다시 눈을 뜬다.
이렇게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고, 마침내 한평생이 된다.
그런데 이 모든 순간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는 것이 있다.
의식이다.
우리는 마치 의식이라는 투명한 안경을 끼고 태어난 사람과 같다.
너무 투명하기 때문에 안경 자체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보는 것은 언제나 그 안경을 통해 나타나는 세계다.
산을 보고, 바다를 보고, 사람을 보고, 별을 본다.
그리고 어느 날 우리는 책에서 우주를 배운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을 알고, 태양계가 은하 안에 있으며, 우주에는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은하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곳은 어디인가?
바로 의식이다.
그런데 이 사실의 시작은 어디야?
바로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주장이야. 그 주장도 그 한 사람의 의식에서 나왔지.
그리고 그 한 사람의 주장은 많은 사람의 의식 안으로 들어가는거지.
그렇다면 우주만큼은 이 투명한 안경 밖에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천봉 아카이브가 말하는 대의식장 이론은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그렇다면 의식장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 전체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1. 의식은 가장 가까이에 있어서 가장 보이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의식을 가지고 살아간다.
시대와 민족도 관계없다.
어린아이도 의식하고, 노인도 의식한다.
과학자도 의식을 통해 연구하고, 철학자도 의식을 통해 생각하며, 종교인도 의식을 통해 신과 존재를 묻는다.
그런데 우리는 의식 자체를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
왜일까?
콘택트렌즈를 생각해보자.
렌즈를 착용한 사람은 하루 종일 렌즈를 바라보지 않는다.
렌즈를 통해 세계를 바라본다.
우리 눈의 수정체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수정체를 통해 세상을 보면서도 매 순간 수정체를 생각하지 않는다.
의식은 이보다 더 근원적인 투명한 안경인지도 모른다.
색도 의식된다.
소리도 의식된다.
아픔도 의식된다.
사랑도 의식된다.
과거도 기억되고 미래도 상상된다.
우리는 의식을 통해 깨어나고, 경험하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다시 잠든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의식을 통해 세계를 만난다.
그렇게 한평생을 살아간다.
그런데 우리는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의식보다 그 의식 안에 나타나는 세계를 먼저 현실이라고 생각해온 것은 아닐까?
2. 대기권 속에서 공기를 잊듯 우리는 의식장 안에서 의식을 잊는다
우리는 대기권 안에서 살아간다.
공기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지만 평소에는 공기를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항상 있기 때문이다.
천봉 아카이브가 말하는 의식장도 이와 비슷한 비유로 접근할 수 있다.
다만 의식장이 우주 어딘가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물리적 대기층이라는 뜻은 아니다.
대기권은 하나의 비유다.
대의식장 이론에서 의식장은 시간·공간·물질을 포함하여 우리가 세계라고 경험하는 모든 것이 나타나는 보다 근원적인 장을 뜻한다.
거대한 보자기를 떠올려도 좋다.
우리는 보통 의식이 물질세계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의식장 이론은 반대로 질문한다.
의식이 물질세계 안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물질이라고 부르는 경험세계가 의식이라는 거대한 보자기 안에 있는 것일까?
우리가 직접 만나는 물질은 언제나 의식 속에서 경험되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의식장은 단순히 80억 개인의식이 서로 연결되는 통신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의식장 이론에서는 우리가 물질세계라고 부르는 세계 전체가 의식장 안에서 경험으로 나타난다고 본다.
대기권이 산과 바다와 도시와 인간을 함께 품고 있듯, 의식장은 시간과 공간과 물질 그리고 그것을 경험하는 개별의식까지 포괄하는 더 근원적인 토대일 가능성을 묻는다.
3. 눈을 감아보라|그 거대한 세계는 어디에서 나타나는가?
잠시 눈을 감아보자.
지금 눈앞의 방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을 떠올려보자.
떠오르는가?
사랑했던 사람을 떠올려보자.
이미 세상을 떠난 부모님의 얼굴도 기억 속에서 나타날 수 있다.
서울을 떠올려보자.
일본을 떠올리고 미국을 떠올려보자.
이제 지구를 떠나보자.
태양이 나타난다.
태양계를 떠올리고 은하를 떠올린다.
마침내 우주까지 상상할 수 있다.
이상하지 않은가?
눈은 감겨 있다.
그 은하의 빛이 지금 망막으로 들어온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의식 안에는 우주까지 들어온다.
과거도 들어온다.
현재도 들어온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도 상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방금 펼쳐진 세계는 어디에 있었는가?
적어도 이 사고실험에서만큼은 답하기 어렵지 않다.
의식 안이다.
눈앞의 공간보다 훨씬 큰 세계가 작은 머릿속으로 물리적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의식 안에서 경험으로 펼쳐졌다.
이것이 의식장을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문이다.
눈을 감고도 세계가 나타난다는 사실은 의식장이란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첫 번째 단서가 된다

4. 이제 눈을 떠보라|현실은 어디에서 경험되는가?
이제 눈을 떠보자.
책상이 보인다.
창문이 보인다.
밖에는 건물과 산이 있다.
우리는 곧바로 말한다.
“아까 것은 상상이지만 지금 이것은 현실이다.”
맞다.
둘을 같다고 할 수 없다.
현실은 내 마음대로 바뀌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공유되며 일정한 규칙성과 지속성을 가진다.
그러나 여기서 다른 질문을 해보자.
그 현실을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빛은 눈에 들어온다.
감각정보는 신경신호로 변환된다.
그러나 내가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신경신호 그 자체가 아니다.
푸른 하늘을 본다.
음악을 듣는다.
사과의 단맛을 느낀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에서 의미를 발견한다.
눈을 감은 세계와 눈을 뜬 세계는 분명 다르다.
하나는 기억과 상상의 성격이 강하고, 다른 하나는 타인과 공유되는 현실이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둘 모두 나에게는 의식을 통해서만 세계가 된다.
의식이 무엇이며 그것이 물질적 세계와 어떤 관계를 갖는가는 현대 철학에서도 여전히 핵심적인 문제로 남아 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신비로운 문제가 하나 숨어 있다.
지금 내 앞에 사과 하나가 있다고 하자.
나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말한다.
“저기에 사과가 있다.”
그런데 내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사과’는 외부의 물체가 통째로 내 안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다.
외부 사과에서 반사된 빛이 눈에 들어오고, 망막과 신경계를 거쳐 뇌에서 처리된다.
그런데 나는 빛의 파장이나 신경의 전기적 신호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빨갛고 둥근 하나의 사과를 보고 있다.
그렇다면 묘한 질문이 생긴다.
내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이 ‘사과’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타난 것일까?
조금 전 눈을 감았을 때를 다시 생각해보자.
내 의식 안에는 하나의 만물백화점이 펼쳐졌다.
사과도 있었고, 부모님의 얼굴도 있었고, 지구도 있었으며, 우주까지 떠올릴 수 있었다.
그때의 사과가 의식 안에서 나타났다는 사실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눈을 뜨고 바라보는 사과는 어떨까?
우리는 그것을 곧바로 ‘밖에 있는 사과’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한 가지 사고실험을 더 해보자.
꿈속에서도 나는 사과를 바라본다.
꿈속의 나는 여기 있고 사과는 저기에 있다.
나는 사과를 집어 들 수도 있고, 한입 베어 물 수도 있다.
꿈속에서는 분명히 ‘나’와 ‘사과’가 안과 밖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경험된다.
그러나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꿈속에서 서로 떨어져 있던 나와 사과와 공간 전체가 결국 하나의 의식 안에서 나타났던 경험세계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눈을 뜬 현실에서도 질문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밖에 있다’고 경험되는 사과 역시 더 큰 의식장 안에서 나와 분리되어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뇌과학이 증명한 결론이 아니다.
바로 여기에서 뇌과학의 설명이 끝나는 지점과 대의식장 이론의 철학적 질문이 만난다.
왜 현실은 나와 사물을 서로 분리된 존재처럼 경험하게 하는가?
왜 사과는 밖에 있고 나는 여기 있는 것처럼 나타나는가?
왜 빛과 감각기관과 신경신호라는 과정을 통해 세계를 경험하도록 되어 있는가?
천봉의 대의식장 이론은 이것을 ‘창조의 연출 구조’일 가능성으로 바라본다.
하나의 의식장에서 경험이 펼쳐지면서도, 그 안에서는 주체와 객체가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식은 현실 뒤에 붙어 있는 작은 부속품이라고 과소평가해도 될까?
아니면 현실이 나에게 현실로 나타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일까?
5. 바위 하나를 가져와보라|‘이것은 물질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누구인가?
이번에는 가장 견고해 보이는 물질을 가져와보자.
커다란 바위 하나가 있다.
손으로 만져보자.
딱딱하다.
무겁다.
쉽게 움직이지도 않는다.
누군가 말한다.
“이래도 물질이 아니란 말인가? 이것은 분명한 물질이다.”
좋다.
그렇다면 질문해보자.
“돌이다”라고 말한 것은 누구인가?
바위인가?
아니다.
나의 의식이다.
“딱딱하다”고 느낀 것은 누구인가?
나이다.
“무겁다”고 느낀 것도 나이고,
마침내
“이것은 물질이다.”
라고 판단한 것도 그것을 경험하는 의식이다.
바위 자체가 자신을 향해
“나는 돌이다.”
“나는 물질이다.”
라고 말하지 않는다.
‘돌’, ‘딱딱함’, ‘무게’, ‘물질’이라는 개념과 경험은 그것을 보고, 만지고, 판단하는 의식 안에서 성립한다.
따라서 최소한 한 가지는 분명하다.
바위가 나에게 ‘물질’로 나타나는 사건은 감각과 의식 안에서 일어난다.
내 의식이 사라진다면 적어도 나에게 경험되던 바위의 색, 촉감, 단단함, 무게 그리고 ‘바위’와 ‘물질’이라는 개념도 함께 사라진다.
그렇다고 이것만으로 외부의 바위 자체가 객관적으로 소멸한다고 증명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큰 질문이 여기에서 시작된다.
6. 80억 명에서 마지막 한 사람까지 지워보면 무엇이 남는가?
이번에는 사고실험의 규모를 지구 전체로 넓혀보자.
80억 명의 사람이 있다고 하자.
한 사람이 사라진다.
바위는 다른 사람이 본다.
백만 명이 사라져도 다른 사람들이 세계를 경험한다.
계속 줄여보자.
10억 명.
1억 명.
백만 명.
만 명.
백 명.
열 명.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
그 마지막 사람이 밤하늘을 바라보며 말한다.
“우주는 여전히 존재한다.”
이제 마지막 한 사람도 사라졌다고 가정해보자.
누가 별을 별이라고 부르는가?
누가 바위를 물질이라고 판단하는가?
누가 시간을 측정하는가?
누가 우주의 크기를 말하는가?
그리고 가장 근원적으로,
누가 우주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우리는 즉시 대답할 수 있다.
“아무도 없어도 우주는 그대로 존재할 것이다.”
그럴 수 있다.
자연과학 역시 인간의 관찰 여부와 관계없이 작동하는 물리적 세계를 전제로 놀라운 설명과 예측을 이루어왔다.
그러나 철학적으로 흥미로운 문제가 하나 남는다.
“의식이 하나도 없어도 우주는 존재한다”는 생각 역시 지금 존재하는 의식이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의식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로 이동하여 그 우주를 직접 확인하고 다시 돌아올 수 없다.
따라서 여기에서 질문은 물리학의 범위를 넘어 인식론과 존재론으로 이어진다.
마지막 관찰자까지 사라지는 사고실험은 의식장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인식론과 존재론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7. 의식보다 먼저 있었다는 우주는 어디에 있었는가?
우리는 보통 우주의 역사를 이렇게 배운다.
우주가 있었다.
별과 은하가 만들어졌다.
그 안에 지구가 생겼다.
생명이 나타났다.
뇌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의식이 나타났다.
천봉 아카이브는 이 우주의 역사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빅뱅을 부정하려는 것도 아니며, 별과 은하의 형성이나 생명의 진화를 부정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아래에 한 가지 질문을 더 놓아보려 한다.
의식이 나타나기 전의 그 지구와 생명과 우주는 어떤 의미에서 ‘알려진 세계’였는가?
그 당시 인간이 없었다고 해서 물리적 우주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과거의 우주가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지금 이 순간에는 의식 안에서 알려지고 이해되고 있다.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의식이 나타나기 전에 우주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라는 문제와 직접 연결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걸음 더 근원적인 질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도대체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어떻게 우리에게 알려지는가?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수많은 존재가 인간에게 어떻게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주도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은하도 자신을 은하라고 부르지 않는다.
지구도 자신이 지구라고 선언하지 않는다.
바위 역시 자신을 향해 “나는 물질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것들을 우주, 은하, 지구, 생명, 물질이라고 이름 붙이고,
“이것이 존재한다”
라고 판단하는 것은 누구인가?
현재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범위에서는 인간이다.
그리고 인간 안에서 그것을 보고, 기억하고, 개념화하고, 판단하여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하는 것은 의식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우리에게 알려진 존재’에 대해서는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모든 존재는 어떤 방식으로든 의식을 통과하여 우리에게 알려졌다.
우주는 관측되었다.
별은 관측되었다.
과거의 지구는 지층과 화석과 물리적 흔적을 통해 추론되었다.
우주의 과거 역시 현재의 관측과 이론을 통해 재구성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관측하고 추론하고 이해하여
“그것은 존재했다”
라고 말하는 것은 지금의 의식이다.
현재 약 80억의 인간은 이렇게 형성된 세계를 서로 공유하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사고실험을 하나 해보자.
이번에는 존재가 알려지는 과정을 역순으로 되돌려보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에는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은하와 별과 행성이 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별이 줄어든다.
은하가 줄어든다.
구조가 단순해진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의 지구도, 생명도 없다.
이번에는 반대편에서 존재를 인식하는 인간의 수를 줄여보자.
80억.
10억.
1억.
백만.
만 명.
백 명.
열 명.
한 명.
마지막 한 사람이 밤하늘을 바라보며 말한다.
“우주가 존재한다.”
이제 그 마지막 한 사람마저 0이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여기서 아주 이상한 문제가 발생한다.
별이 존재한다고 말할 사람도 없다.
우주가 존재한다고 판단할 사람도 없다.
시간을 계산할 사람도 없다.
‘물질’이라는 개념도 없다.
심지어
“아무도 없어도 우주는 존재한다.”
라고 생각할 의식조차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최소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 이전에 물리적 무엇인가가 절대로 존재하지 않았다고 여기서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 이전의 그것을 지금 우리가 말하는 의미의 ‘우주’, ‘별’, ‘물질’, ‘시간’, 그리고 ‘존재’라고 규정하는 행위는 의식이 나타난 이후에 이루어진다.
바로 이 차이가 중요하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한다.
“우주가 먼저 존재했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인간과 의식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 문장 전체를 말하고 있는 것도 현재의 의식이다.
과거의 우주를 상상하는 것도 의식이고,
138억 년이라는 시간을 계산하는 것도 의식이며,
인간이 없었던 시대를 재구성하는 것도 의식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천봉 아카이브는 기존 우주론이 틀렸다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근원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우주가 인간보다 먼저 존재했다’는 물리적 시간 순서와, ‘우주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의미를 갖게 되었다’는 인식의 순서를 같은 것으로 취급해도 되는가?
물리학의 시간표에서는 우주가 인간보다 먼저다.
그러나 존재가 알려지는 인식의 시간표에서는 의식이 언제나 출발점이다.
그래서 대의식장 이론은 여기서 순서를 다시 묻는다.
우주가 먼저 존재하고 그 안에서 의식이 태어난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존재하는 우주’라고 경험하고 이해하는 세계 자체가 처음부터 더 근원적인 의식장 안에서 성립하고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까지,
“우주가 먼저이고 의식은 나중이다”제6부 제5장: 우주는 정말 의식보다 먼저 존재했는가?라는 문장은 물리적 연대에 대한 설명일 수는 있어도, 존재 자체의 근원까지 설명한 최종 답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여기서 질문은 더 깊어진다.
만약 우주와 은하와 별과 행성을 모두 물질이라고 한다면, 그 엄청난 물질적 세계와 질서는 어떻게 성립했는가?
우리는 집 하나를 지으려고 해도 철근과 시멘트와 목재와 에너지가 필요하다.
물론 우주가 인간의 집처럼 어딘가에서 건축자재를 가져와 조립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현대 우주론에서 우주의 팽창 역시 새로운 은하나 지구를 계속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과정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모든 과학적 설명을 받아들인 뒤에도 더 근원적인 질문은 남는다.
왜 애초에 무언가가 존재하는가?
왜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는가?https://plato.stanford.edu/entries/kant/?utm_source=chatgpt.com
왜 물질과 에너지와 자연법칙이 존재하는가?
그리고 왜 그 모든 것을 알고 경험할 수 있는 의식이 존재하는가?
의식이 모든 것을 담는 그릇이라면,
그 그릇이 등장하기 전의 세계를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말할 수 있는가?
천봉의 대의식장 이론은 여기에서 기존 과학을 폐기하는 대신 그 아래에 또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물질이 먼저이고 의식이 나중이라는 한 방향의 설명만으로 존재 전체를 설명할 수 있는가?
아니면 보다 근원적인 의식장이 있고, 시간·공간·물질로 이루어진 우주가 그 장 안에서 경험 가능한 세계로 펼쳐지는 것은 아닐까?
8.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다시 잠들 때까지 무엇이 나와 함께하는가?
거대한 우주에서 다시 우리의 하루로 돌아와보자.
아침에 잠에서 깨어난다.
몸을 움직이기 전에 생각 하나가 떠오른다.
오늘 해야 할 일.
만나야 할 사람.
어제 있었던 사건.
갖고 싶은 물건.
해결해야 할 문제.
그리고 몸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일어나고, 씻고, 옷을 입고 세상으로 나간다.
하루 종일 수많은 사람과 사물을 만난다.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하고, 행동한다.
그리고 밤이 되면 다시 잠자리에 든다.
다음 날 다시 깨어난다.
이 과정을 하루가 아니라 한평생으로 확대해보자.
그동안 몸은 변한다.
집도 변한다.
사람도 변한다.
생각도 변한다.
그러나 경험의 모든 순간에 공통적으로 따라다니는 조건이 하나 있다.
의식이다.
우리는 의식이라는 투명한 안경을 끼고 깨어난다.
그 안경으로 부모를 알고,
사람을 만나고,
물질을 만지고,
시간을 경험하고,
공간을 이동하고,
세상을 배우고,
마침내 우주라는 존재까지 알게 된다.
그리고 다시 잠든다.
다음 날 또다시 그 의식과 함께 세계로 돌아온다.
그렇게 하루가 되고 한평생이 된다.
우리는 우주라는 것을 직접 여행해서 모두 확인한 뒤 알게 된 것이 아니다.
보고, 듣고, 배우고, 관측하고, 생각하면서 우주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는 언제나 의식이라는 투명한 안경이 있었다.
그렇다면 우주만은 어떻게 이 투명한 안경과 완전히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적어도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는 단 한 번도 의식이라는 문을 통과하지 않고 우리에게 알려진 적이 없다.
9. 그렇다면 ‘의식장’이란 무엇인가?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도대체 의식장이란 무엇인가?
천봉의 대의식장 이론에서 의식장은 단순히 뇌 안에서 일어나는 개인적인 생각의 공간을 뜻하지 않는다.
또한 우주 어딘가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물리적 공간을 뜻하지도 않는다.
의식장은 우리가 시간·공간·물질이라고 부르는 경험세계가 나타날 수 있는 보다 근원적인 장이라는 가설이다.
대기권이 지구를 감싸듯,
거대한 보자기가 그 안의 것들을 품듯,
대의식장 이론은 우리가 물질세계라고 부르는 세계 전체가 보다 근원적인 의식의 장 안에서 경험으로 성립할 가능성을 묻는다.
우리가 물질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에게 언제나 의식 속에 나타난 물질이다.
우리가 공간이라고 부르는 것도 의식되고,
시간의 흐름 역시 의식되며,
거대한 우주 역시 의식 속에서 알려지고 이해된다.
그리고 그 의식장 안에서 수많은 개인의식이 서로 소통한다.
한 사람이 배운 것을 다른 사람이 배운다.
한 사람의 생각이 언어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된다.
한 세대의 지식이 다음 세대로 넘어간다.
과학이 축적되고,
철학이 축적되고,
종교와 예술과 문명이 축적된다.
현대적인 비유를 사용한다면 개별 인간은 각자의 경험을 가진 퍼스널 휴먼 PC와 비슷하다.
그리고 수많은 PC가 하나의 거대한 사이버 세계에 연결되듯, 개별의식 역시 서로 소통하고 경험을 공유하면서 하나의 인간세계를 형성한다.
그러나 대의식장은 단순한 인간의 정보 네트워크보다 더 큰 개념이다.
천봉의 대의식장 이론에서는 원의식, 대의식장, 개별의식 그리고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가 하나의 더 큰 구조 안에서 연결될 가능성을 탐구한다.
컴퓨터 안에 우주 하나를 만들어보자.
별을 만든다.
은하를 만든다.
행성을 만든다.
화면 속에서는 거대한 우주가 펼쳐진다.
그러나 그 세계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 사라지면 화면의 우주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 우주가 실제 컴퓨터 프로그램이라는 뜻은 아니다.
이 비유가 던지는 질문은 단 하나다.
나타나는 세계와 그 세계가 나타날 수 있게 하는 기반 가운데 무엇이 더 근원적인가?
대의식장 이론은 여기서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의식이 우주 속에서 우연히 생겨난 작은 현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경험하는 우주가 더 근원적인 의식장 안에서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에필로그|우주는 의식 밖에 있었던 적이 있는가?
우리는 평생 의식이라는 투명한 안경을 끼고 살아왔다.
그 안경으로 부모의 얼굴을 보았고,
하늘을 보았으며,
땅을 밟았고,
학교에서 지구를 배웠으며,
책과 과학을 통해 태양계와 은하와 우주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우리는 말한다.
“우주는 나와 관계없이 존재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시 한번 물어보자.
그 말을 지금 하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그 우주를 알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우주가 인간보다 먼저 존재했다고 이해하는 것은 누구인가?
인간이 모두 사라진 뒤에도 우주가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누구인가?
언제나 그 자리에는 의식이 있다.
그래서 천봉 아카이브는 물질이 없다고 선언하지 않는다.
대신 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물질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에게 언제나 의식 속에서 경험되는 물질이 아니었던가?
사람 안에 의식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이라는 존재도 의식 안에서 경험된다.
사람은 우주 안에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 전체 역시 의식 안에서 알려지고 경험된다.
그렇다면 관계는 단순한 직선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주가 먼저 있고 물질에서 뇌가 생기고 뇌에서 의식이 생겼다는 설명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근원적인 층위가 있을 가능성을 다시 물어볼 수 있다.
천봉의 대의식장 이론은 그 구조를 다음과 같이 탐구한다.
원의식 → 대의식장 → 개별의식 → 경험되는 시간·공간·물질세계
그리고 개별의식들은 서로 만나고 소통하면서 하나의 인간세계를 만들어간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우리는 다시 세계를 만난다.
의식이라는 투명한 안경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밤이 되면 다시 눈을 감는다.
다음 날 다시 세계를 만난다.
그렇게 하루가 되고,
한평생이 된다.
그 한평생 동안 우리는 수없이 많은 것을 보았지만,
의식 없이 세계를 경험한 순간만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가 의식을 가지고 우주 안에 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경험하는 우주가 처음부터 의식이라는 더 큰 장 안에서 펼쳐지고 있었던 것일까?
천봉 아카이브가 말하는 대의식장 이론은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이전 이야기|제6부 제5장
제6부 제5장에서는 더 근원적인 질문을 던졌다.
우주는 정말 의식보다 먼저 존재했는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해온 우주와 의식의 순서를 다시 살펴보고, 빅뱅과 물질의 역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모든 것을 알고 경험하는 의식이라는 토대가 무엇인지 탐구했다.
제6부 제5장의 질문은 이번 제6장으로 이어진다.
만약 의식이 단순히 우주 안에 뒤늦게 생겨난 현상만이 아니라면, 그 의식이 존재하는 더 큰 장은 무엇인가?
바로 그 질문에서 의식장과 대의식장 이론의 탐구가 시작된다.
다음 이야기|제6부 제7장 예고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각자의 의식은 서로 다른데, 우리는 왜 하나의 현실을 함께 경험하는가?
나는 달을 본다.
당신도 같은 달을 본다.
나는 바위를 만진다.
다른 사람도 그 바위를 만질 수 있다.
꿈과 상상은 개인마다 다르지만 현실은 놀라울 정도로 지속적이고 공유된다.
그렇다면 80억 개의 개별의식은 어떻게 하나의 세계를 함께 경험하는 것일까?
개인의식과 대의식장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그리고 우리가 ‘객관적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떻게 성립하는가?
제6부 제7장에서는 ‘공유되는 현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대의식장과 개별의식의 관계를 한 단계 더 깊이 탐구한다.
거대한 우주가 물질이라면, 그 최초의 재료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이번 2분 영상에서는 우리가 당연하게 믿어 온 ‘물질로 이루어진 우주’를 다시 의심해 봅니다. 눈을 감고 우주를 떠올리는 사고실험부터 빛과 신경 신호, 의식적 경험의 관계까지 짧지만 밀도 있게 살펴봅니다.
우리가 우주를 직접 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의식 안에 나타난 우주를 경험하고 있는 것인지 영상을 통해 함께 생각해 보세요.
▶ 2분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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