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절 원자와 의식, 무엇이 먼저였는가
원자와 의식은 어떤 관계일까요?
인류는 오래전부터 세상에서 처음부터 존재한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왔습니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하나의 질문을 던져 왔다.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그리고 세상에서 처음부터 존재한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단순히 오래된 철학적 호기심이 아니다.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다.
세상의 시작에 물질이 있었다면, 인간 역시 물질에서 출발한 존재가 된다.
반대로 물질보다 더 근본적인 무엇이 있었다면,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고대의 철학자들은 물, 불, 공기와 같은 자연의 요소에서 세계의 근원을 찾으려 했다.
어떤 철학자는 변화하지 않는 하나의 존재를 말했고, 또 다른 철학자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운동을 세계의 본질로 보았다.
이처럼 인류의 철학은 처음부터 세계의 가장 밑바닥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를 찾는 작업이었다.
수많은 대답이 제시되었지만, 질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세계의 모든 것을 이루는 가장 작은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
이 질문에서 원자론이 시작되었다.
제2절 데모크리토스는 왜 원자를 말했는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세상의 모든 물질이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작은 알갱이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 작은 존재를 원자라고 불렀다.
원자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사물은 서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돌은 단단하고, 물은 흐르며, 나무는 자라고, 인간은 생각한다.
그러나 데모크리토스는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든 물질이 궁극적으로는 같은 기본 단위로 이루어져 있을 가능성을 생각했다.
이 생각은 당시에는 실험으로 확인된 과학적 사실이 아니었다.
철학적 사유를 통해 세상의 구조를 추론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원자라는 개념은 오랫동안 살아남았다.
그리고 현대 과학은 실제로 물질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인류는 원자를 연구하면서 물질의 구조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원자의 결합으로 분자가 만들어지고, 분자의 결합으로 우리가 경험하는 수많은 물질이 형성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원자론은 물질 세계를 설명하는 강력한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현대 과학은 데모크리토스가 생각한 원자가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최종 단위가 아니라는 것도 발견했다.
제3절 원자보다 작은 세계에서는 무엇이 발견되었는가
과학자들은 원자 내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원자 안에는 전자와 원자핵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원자핵 안에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있었고, 그 내부에는 다시 쿼크와 같은 더 작은 구성 요소가 존재했다.
과학이 발전할수록 물질의 가장 작은 단위는 계속 달라졌다.
한때 원자가 세계의 최종 단위라고 생각했지만, 원자 내부에는 더 깊은 세계가 존재했다.
현대 물리학은 이제 물질을 단순히 단단한 알갱이로만 설명하지 않는다.
입자는 파동과 같은 성질을 보이기도 하며, 양자장은 입자가 나타날 수 있는 근본적인 배경으로 논의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세상에서 처음부터 존재한 것은 원자였을까.
원자보다 작은 입자였을까.
아니면 입자가 나타나는 장이었을까.
과학은 물질을 더 작은 단위로 나누면서 세계의 구조를 정교하게 설명해 왔다.
그러나 세계의 가장 작은 단위를 발견하는 것과 세계가 존재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밝히는 것은 같은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작은 입자를 발견해도 이런 질문은 남는다.
그 입자는 왜 존재하는가.
그 입자를 움직이는 법칙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제4절 원자는 스스로 자신을 원자라고 말하는가

여기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잘 보지 않았던 하나의 첫 단추를 발견하게 된다.
원자는 스스로 자신을 원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전자도 스스로 자신을 전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자연은 자신의 구조를 스스로 설명하지 않는다.
원자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 개념을 세우고, 그것을 연구한 존재는 인간이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인간의 의식이었다.
데모크리토스가 원자라는 개념을 제시했다는 말은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데모크리토스의 의식이 원자라는 개념을 발견하고 구성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의 눈이 원자를 직접 본 것도 아니다.
당시에는 원자를 관찰할 실험 장치도 없었다.
그는 생각했다.
보이는 물질을 계속 나누어 가면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어떤 단위에 도달할 것이라고 추론했다.
그 추론을 가능하게 한 것은 물질 자체가 아니었다.
생각하고 질문하고 개념을 세우는 의식이었다.
원자론의 출발점에도 의식이 있었다.
현대 물리학의 출발점에도 의식이 있다.
이 사실은 너무 당연해 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오랫동안 중요한 문제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제5절 파인만은 무엇으로 원자를 연구했는가
현대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원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인류의 과학 지식을 단 하나의 문장만 남겨야 한다면,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남겨야 한다는 취지의 설명을 하기도 했다.
이 말은 원자가 현대 과학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보여 준다.
대의식장 이론은 이러한 원자론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원자는 물질 세계를 설명하는 핵심적인 개념이다.
원자에 관한 연구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물리학과 화학, 생물학과 의학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발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더할 수 있다.
파인만은 무엇으로 원자를 연구했는가.
현미경으로 연구했는가.
실험 장치로 연구했는가.
수학과 공식으로 연구했는가.
물론 이러한 도구들은 모두 필요했다.
하지만 현미경은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실험 장치는 측정값의 의미를 스스로 이해하지 못한다.
수식도 자신이 설명하는 세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 모든 도구를 사용하고, 결과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최종 주체는 의식이다.
과학자는 관찰한다.
관찰한 결과를 비교한다.
그 결과에서 일정한 관계를 발견한다.
발견한 관계를 개념과 수식으로 표현한다.
이 모든 과정은 의식의 작용 안에서 이루어진다.
제6절 원자론은 무엇 위에 세워져 있는가

원자론이 성립하려면 먼저 원자에 대한 관찰과 추론이 있어야 한다.
관찰과 추론이 이루어지려면 인식이 필요하다.
인식이 가능하려면 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 과정을 단순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의식이 세계를 관찰한다.
관찰을 통해 차이와 관계를 인식한다.
인식한 내용을 하나의 개념으로 만든다.
그 개념을 바탕으로 원자론을 세운다.
원자론은 더 발전하여 현대 물리학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원자론은 의식과 무관하게 홀로 세워진 이론이 아니다.
의식의 인식 작용 위에서 성립한 이론이다.
원자가 의식을 설명하기 이전에, 의식은 이미 원자를 관찰하고 설명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의식이 마음대로 원자를 만들어 냈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가 말하려는 것은 원자의 객관적 존재를 단순히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원자에 대한 모든 지식과 설명은 반드시 의식의 인식 과정을 거친다는 뜻이다.
우리는 세계를 의식 밖으로 나가 직접 바라볼 수 없다.
세계에 관한 모든 경험은 의식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물질을 연구할 때도 물질만 볼 것이 아니라, 물질을 인식하는 의식의 작용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제7절 칸트는 왜 시간과 공간을 인식의 형식이라 했는가
칸트는 인간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직접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인식의 형식을 통해 세계를 경험한다.
우리는 시간 밖에서 어떤 사건을 경험할 수 없다.
공간 밖에서 어떤 사물을 바라볼 수도 없다.
모든 사물은 어디에 있는 것으로 나타나며, 모든 사건은 언제 일어난 것으로 경험된다.
그러나 칸트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은 사물 그 자체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는 단순한 창문이 아니다.
인간의 인식이 세계를 경험하는 기본 형식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원자라고 부르는 것도 인간의 인식과 완전히 분리하여 말하기 어렵다.
원자는 특정한 공간적 위치와 관계 속에서 설명된다.
입자의 움직임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측정된다.
크기와 거리, 속도와 변화도 시간과 공간이라는 인식의 틀 안에서 이해된다.
그러므로 물질에 관한 과학적 설명은 이미 인간의 인식 형식 안에 들어와 있다.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의 세계는 의식을 통과하여 드러난 세계라는 뜻이다.
칸트의 철학은 물질을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인간이 세계를 어떻게 알 수 있는지를 먼저 물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철학과 의식의 문제가 만난다.
제8절 원자는 그림이고 의식은 도화지인가

원자와 의식의 관계는 그림과 도화지에 비유할 수 있다.
원자는 그림이다.
의식은 도화지다.
그림이 나타나려면 그림이 그려질 바탕이 필요하다.
도화지가 없으면 그림은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
집을 세우기 위해서도 먼저 기초가 있어야 한다.
컴퓨터 프로그램이 실행되려면 그 프로그램을 받아들이고 작동시키는 운영체제가 필요하다.
화면에 나타난 영상이 아무리 화려해도, 그것이 나타날 바탕이 없다면 우리는 그 영상을 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원자를 설명하는 이론과 수식도 그것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의식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원자는 물질 세계를 구성하는 단위일 수 있다.
그러나 의식은 원자를 설명하는 배경이다.
이 문장은 원자론과 대의식장 이론의 관계를 분명하게 보여 준다.
대의식장 이론은 원자를 지우려는 이론이 아니다.
그림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이 나타나는 도화지를 함께 살펴보자는 제안이다.
물질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에 관한 모든 경험과 지식이 성립하는 더 근본적인 배경을 탐구하자는 것이다.
제9절 대의식장 이론은 원자론을 부정하는가
대의식장 이론은 원자론을 부정하지 않는다.
빅뱅 이론이나 현대 물리학의 성과를 단순히 틀렸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과학은 관찰과 실험을 통해 물질 세계의 구조와 작동 방식을 밝혀 왔다.
그 성과는 존중받아야 한다.
다만 과학이 물질의 구조를 설명했다고 해서 의식의 문제까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원자의 구조를 설명할 수 있어도 원자를 이해하는 의식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남는다.
뇌의 활동을 측정할 수 있어도 그 활동이 어떻게 주관적인 경험이 되는지는 완전히 설명되지 않았다.
빛이 눈에 들어와 신경 신호로 변환되는 과정을 설명할 수 있어도, 그 신호가 어떻게 색과 형태를 가진 하나의 세계로 경험되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따라서 대의식장 이론은 기존 과학 위에 억지로 새로운 설명을 덧씌우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존 과학이 충분히 다루지 못했던 배경층을 탐구하려는 시도다.
그 배경층이 의식일 가능성을 제안하는 것이다.
원자는 물질 세계의 중요한 단위다.
그러나 의식은 원자를 관찰하고 개념화하고 설명하는 모든 과정의 바탕이다.
물질의 이론은 의식 안에서 세워진다.
그렇다면 의식은 물질 연구의 주변 문제가 아니라, 그 연구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근본 문제일 수 있다.
제10절 세상에서 처음부터 존재한 것은 물질이었는가

이제 우리는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세상에서 처음부터 존재한 것은 무엇인가.
원자였는가.
원자보다 더 작은 입자였는가.
에너지였는가.
양자장이었는가.
아니면 세계를 드러나게 하는 의식의 근본적인 장이었는가.
현대 우주론은 초기 우주의 상태를 연구한다.
우주가 매우 뜨겁고 밀도 높은 상태에서 팽창해 왔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초기 우주의 물질과 에너지를 설명하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 상태를 지배한 법칙은 왜 존재했는가.
법칙과 질서는 어떻게 성립했는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하나의 우주 역사로 이해하는 의식은 무엇인가.
물질이 먼저 존재한 뒤 어느 순간 의식이 나타났다는 설명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이 설명만으로 의식의 탄생 과정이 모두 밝혀진 것은 아니다.
물질이 아무리 복잡하게 결합하더라도 왜 그 안에서 ‘나’라는 주관적 경험이 생겨나는지는 여전히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다.
물질이 의식을 만들어 냈다고 말하려면 물질이 어떻게 주관적인 경험으로 전환되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그 경계를 명확히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반대 방향의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의식이 물질에서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물질과 세계가 드러날 수 있도록 하는 더 근본적인 배경은 아니었을까.
이것은 확정된 답이 아니다.
그러나 충분히 탐구할 가치가 있는 질문이다.
제11절 이제 왜 의식을 연구해야 하는가
인류는 오랫동안 물질을 연구했다.
물질을 분해했고, 결합했으며, 그 성질을 이용해 문명을 발전시켰다.
그 결과 인간은 하늘을 날게 되었고, 우주로 나아갔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의 세계를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만들었고, 이제는 인간의 언어를 처리하는 인공지능도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물질에 관한 지식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하나의 빈자리가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 모든 것을 연구하는 인간 자신은 무엇인가.
인간은 자신의 몸을 연구했다.
뇌의 구조도 연구했다.
신경세포의 전기적 활동과 화학적 전달 과정도 관찰했다.
하지만 그 활동을 경험하는 ‘나’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뇌 속에서 전기 신호가 이동한다는 사실과, 내가 붉은 장미를 본다는 경험은 같은 설명이 아니다.
신경세포의 활동을 측정하는 것과, 내가 기쁘고 슬프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하는 것도 같은 문제가 아니다.
물질을 이해하는 것만으로 인간을 모두 이해할 수 없다면, 이제 연구의 방향을 넓혀야 한다.
물질을 연구하는 과학과 함께, 물질을 인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의식 자체를 연구해야 한다.
물질을 이해한 시대가 오늘날의 문명을 만들었다면, 의식을 이해하는 시대는 인간 자신을 이해하는 새로운 문명을 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제12절 인간의 의식은 처음부터 지금과 같았는가

제4부에서 우리는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몸과 뇌의 작용만으로 인간의 모든 경험을 설명할 수 있는지도 살펴보았다.
의식은 어디에서 오는지 질문했고, 최초의 인간을 뼈와 물질만으로 찾는 관점에서 벗어나 최초의 의식이라는 문제를 생각해 보았다.
또한 의식 밖에 현실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단정할 수 있는지 물으며,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세계가 의식 안에서 나타난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질문에 도착했다.
세상에서 처음부터 존재한 것은 무엇인가.
원자론과 현대 물리학은 물질 세계를 매우 정교하게 설명해 왔다.
그러나 원자를 말하고, 관찰하고, 연구하며, 그 의미를 이해한 것은 언제나 의식이었다.
원자는 세계를 설명하는 단위일 수 있다.
그러나 의식은 원자를 설명하는 배경이다.
대의식장 이론은 원자를 부정하지 않는다.
물질보다 더 근본적인 배경으로 의식을 함께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물질을 연구하며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이제 인류는 또 하나의 새로운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
인간의 의식은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을까.
이 질문은 철학의 마지막 질문인 동시에,
종교가 가장 오래 붙잡아 온 질문이기도 하다.
다음 제5부에서는,
인간의 의식은 왜 지금과 같은 상태가 되었는지,
그리고 철학과 과학이 끝내 답하지 못했던 질문을 종교는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 2분 질문 영상 소개
🎬 2분 만에 핵심 질문을 경험해 보세요.
원자는 스스로 자신을 원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원자를 발견한 것은 누구였을까요?
세상에서 처음부터 존재한 것은 물질이었을까요?
아니면 물질을 이해하는 의식이었을까요?
2분 동안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직접 경험해 보십시오.
👉 2분 질문 영상 보기
https://youtube.com/shorts/Ixe209J1WRs?feature=share(2분 영상 링크)
📌 10분 탐구 영상 소개
🎬 왜 의식이 원자보다 더 근본적인 배경일 수 있는가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부터 현대 물리학,
칸트의 철학과 대의식장 이론까지.
원자론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왜 의식을 더 근본적인 배경으로 바라볼 수 있는지를
차근차근 탐구합니다.
👉 10분 탐구 영상 보기
(10분 영상 링크)
📌 20분+ Deep Audio 소개
🎧 잠들기 전 함께하는 깊은 사유
세상에서 처음부터 존재한 것은 무엇인가.
원자였을까요.
에너지였을까요.
아니면 의식이었을까요.
철학과 과학이 끝내 풀지 못한 질문을
조용히 따라가며 스스로 사유해 보십시오.
👉 20분+ Deep Audio 듣기
(20분 영상 링크)
📌 시리즈 이어보기
📖 이 글은 『제4부 의식은 어떻게 탄생하는가』의 마지막 장입니다.
제4부에서는 철학과 과학을 통해 의식의 근본성을 탐구했습니다.
다음 제5부에서는
“인간의 의식은 처음부터 지금과 같았는가?”
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철학과 과학이 끝내 답하지 못했던 문제를 종교의 관점에서 새롭게 탐구합니다.
👉 다음 제5부 이어 읽기
(제5부 가기 전)
프롤로그
물질의 역사에서 의식의 역사로
지금까지 우리는 철학과 과학이라는 두 개의 시선을 통해 인간과 우주, 그리고 의식의 근원에 대해 살펴보았다.
인류는 오랫동안 물질이 모든 존재의 출발점이라고 믿어 왔다. 원자가 우주를 만들고, 물질이 생명을 만들며, 생명이 다시 의식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물질 중심의 세계관은 철학과 과학, 그리고 현대 문명의 토대가 되어 왔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우리는 하나의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
정말 물질이 먼저였는가.
만일 물질을 인식하는 의식이 없다면, 과연 물질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칸트는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세계는 인식 안에서만 존재한다고 말하였다. 그는 인간이 직접 경험하는 것은 언제나 인식된 세계일 뿐이며, 인식 밖의 ‘물 자체’는 알 수 없다고 설명하였다.
불교의 유식사상 역시 오직 식(識)만이 존재한다고 말하며, 의식 밖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현대 과학 역시 양자역학의 관찰자 문제를 통해, 관찰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물질의 상태를 완전한 현실로 규정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철학과 종교, 그리고 현대 과학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놀랍게도 모두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세계는 의식과 분리되어 성립할 수 있는가.
대의식장 이론은 바로 이 질문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의식은 물질의 부산물이 아니라, 물질을 존재하게 하고 인식하게 하는 보다 근원적인 장(場)이라는 것이다.
만일 이 관점이 옳다면, 우리는 단지 하나의 이론을 수정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세계를 바라보는 출발점 자체를 다시 세워야 한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1에서 100까지 순서대로 이어진다고 믿었던 숫자가 사실은 100에서 시작하여 1로 향하는 구조였다면, 하나의 숫자만 고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숫자 전체의 질서를 처음부터 다시 이해해야 한다.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 마찬가지이다.
지금까지 인류는 물질을 출발점으로 삼아 우주와 생명, 인간과 역사를 설명해 왔다.
그러나 의식이 물질보다 먼저 존재하는 근원이라면, 지금까지의 수많은 해석 역시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 역시 다시 생각해야 한다.
전쟁과 갈등, 탐욕과 질투, 환경 파괴와 불평등, 질병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까지.
우리는 오랫동안 이러한 문제를 물질적인 문제로 이해하고 물질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나 만일 모든 경험의 근원이 의식이라면, 문제의 출발점 역시 의식이며, 해결의 시작도 의식이어야 한다.
사진에 얼룩이 생겼을 때 사진만 계속 수정한다고 해서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얼룩의 원인이 카메라에 있다면, 진정으로 고쳐야 할 것은 사진이 아니라 카메라 자체이다.
인간의 삶도 다르지 않다.
겉으로 드러나는 수많은 문제들은 결과일 뿐이며, 그 결과를 만들어 내는 근원은 인간의 의식 속에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의식의 구조를 이해하고 변화시키는 일은 인간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가장 근본적인 과제가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종교를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지금까지 우리는 물질의 역사는 실제 역사이고, 종교의 역사는 신앙과 신화의 역사라고 구분해 왔다.
그러나 물질이 의식의 그림자라면, 종교는 더 이상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다.
종교는 인류가 자신의 의식과 존재의 근원을 탐구해 온 정신의 역사이며, 의식의 역사이다.
우리는 지금 존재하는 자신의 의식에서 출발하여 부모와 조상으로, 다시 인류의 시조를 거쳐 마침내 원의식이라는 근원에 이르는 흐름을 살펴보았다.
이 흐름은 단순한 혈통의 계보가 아니다.
의식이 이어져 온 역사이며, 인간 존재가 자신의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그렇다면 종교가 수천 년 동안 말해 온 신과 불성, 성령과 영혼, 깨달음과 해탈은 단순한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인류가 의식의 근원을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속에서 표현해 온 기록일 수도 있다.
우리는 이제 종교를 믿기 위해 종교를 살펴보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인류가 오랜 세월 동안 의식이라는 근원적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설명하며, 어떻게 인간의 삶 속에서 실천하려 했는지를 다시 읽어 보려는 것이다.
이제부터 시작될 제5부는 종교를 소개하는 장이 아니다.
인류 의식의 역사를 따라가며, 인간 존재의 근원을 다시 탐구하는 여정이다.
그 여정 속에서 우리는 종교가 남긴 수많은 가르침을 대의식장 이론이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다시 읽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