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옷의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지면 어떻게 될까?
두 번째 단추도 틀어지고,
세 번째 단추도 틀어지고,
결국 마지막 단추까지 모두 어긋난다.
천봉은 오랫동안 성경을 읽으며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혹시 인류가 창세기의 첫 단추를 잘못 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창세기의 첫 해석이 잘못되었다면,
그 뒤에 이어지는 수많은 성경 해석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성경이 말하고자 했던 본래의 뜻도 가려질 수 있다.
천봉이 성경 재해석을 시작하게 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700만 년과 6000년의 충돌
현대 고고학은 인류의 역사를 수백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한다.
현재 알려진 초기 인류 화석들은 약 700만 년 전까지 올라간다.
반면 전통적인 성경 해석은 아담 이후의 역사를 계산하여 대략 6000년 정도로 이해해 왔다.
700만 년.
그리고 6000년.
그 차이는 너무나 크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결국 이런 결론에 도달한다.
“성경은 과학과 맞지 않는다.”
“성경은 고대인의 신화일 뿐이다.”
“성경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혹시 성경이 틀린 것이 아니라,
우리가 창세기를 읽는 방식이 틀린 것은 아닐까?
성경은 창세부터 비밀을 말한다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성경은 스스로 창세기의 내용이 비밀이라고 말한다.
시편 78편은 이렇게 기록한다.
“내가 입을 열어 비유를 베풀어서 옛부터 감추어졌던 것을 드러내리니”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비유”와 “감추어진 것”이다.
성경은 창세부터 기록된 내용 가운데 비밀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비밀은 비유의 형태로 기록되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긴다.
우리는 과연 그 비유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생명나무는 정말 나무인가
창세기에는 생명나무가 등장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제 나무로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 전체를 살펴보면 생명나무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다.
요한계시록 22장에서는 생명나무가 열두 가지 열매를 맺는다고 기록한다.
열두 가지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열두 지파와 연결된다.
그렇다면 생명나무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생명을 가진 사람들,
즉 하나님의 생명이 함께하는 무리를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예수께서도 요한복음 15장에서 자신을 참포도나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성경 속 나무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사람을 비유하는 표현일 가능성이 있다.
선악나무는 정말 나무인가
선악나무도 마찬가지다.
만약 생명나무가 비유라면 선악나무도 비유일 수 있다.
선악과를 먹은 후 사람은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그렇다면 선악나무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선과 악이 섞여 있는 어떤 존재,
혹은 사람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창세기는 처음부터 영적인 문제를 설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뱀은 정말 뱀인가
창세기의 뱀은 말을 한다.
사람을 유혹한다.
거짓말을 한다.
사람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이런 모습은 단순한 파충류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뱀 역시 어떤 영적 존재,
혹은 사람들을 미혹하는 악한 지도자들을 비유한 표현일 가능성이 있다.
만약 그렇다면 창세기의 이야기는 동물 이야기나 자연 이야기라기보다 영적 역사에 대한 기록이 된다.
빛은 무엇인가
창세기 1장은 빛이 먼저 창조되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해와 달과 별은 그 이후에 등장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에서 의문을 가진다.
해가 없는데 어떻게 빛이 먼저 존재할 수 있을까?
그러나 만약 빛이 단순한 물리적 빛이 아니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성경은 곳곳에서 진리를 빛으로 표현한다.
반대로 거짓과 악을 어둠으로 표현한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역시 빛의 아들과 어둠의 아들을 구분한다.
그렇다면 창세기의 빛은 진리를 가진 사람들의 출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해와 달과 별의 비밀
많은 사람들은 해와 달과 별을 단순한 천체로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스스로 그 비밀을 설명한다.
창세기 37장에서 요셉은 꿈을 꾼다.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이다.
그 꿈을 들은 야곱은 곧바로 의미를 이해한다.
해는 아버지 야곱.
달은 어머니.
별들은 형제들을 의미했다.
즉 성경 안에서 해와 달과 별은 이미 사람과 조직구성원을 상징하는 비유로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창세기의 해와 달과 별도 단순한 천체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사도행전 17장의 충격

만약 창세기가 전 인류의 시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면?
만약 온 인류의 시작에 대한 설명이 사도행전 17장에 있다면?
창세기는 완전히 다른 책이 된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등장한다.
성경은 과연 인류의 시작을 어디에서 설명하고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창세기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사도행전 17장은 다른 단서를 제공한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세상과 만물을 지으시고 모든 민족을 한 혈통으로 만드셨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번성하면서 각 나라와 경계가 생겨났다고 설명한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인류 역사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수많은 민족과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반면 창세기 속 이야기는 특정 계보와 특정 민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렇다면 창세기는 온 인류의 시작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세계 속에서 시작된 특별한 영적 역사를 기록한 것은 아닐까?
창세기는 영적 재창조의 역사인가
만약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이 맞다면 창세기는 전혀 다른 책이 된다.
창세기는 자연창조의 역사가 아니다.
인류창조의 역사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택하고,
한 민족을 택하고,
그들을 통하여 잃어버린 생명을 회복하는 영적 재창조의 역사일 수 있다.
아담과 하와는 빛의 시작을 의미하고,
선악과 사건은 빛이 다시 어둠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의미하며,
성경 전체는 그 잃어버린 상태를 회복하기 위한 거대한 구원의 이야기로 읽힐 수 있다.
처음부터 종말을 말한 이유
이사야 46장 10절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마지막을 알리신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창세기는 단순히 시작만을 기록한 책이 아니다.
창세기는 결말까지 포함한 예언의 출발점이다.
에덴에서 시작된 문제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요한계시록은 그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1장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말한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지나가고,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된다.
성경은 결국 처음 잃어버린 것을 다시 회복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결론
천봉은 창세기를 자연창조와 인류창조의 기록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창세기를 인류 구원을 위한 영적 재창조의 예언서로 바라본다.
만약 이 관점이 옳다면 성경은 더 이상 과학과 충돌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의식과 생명,
구원과 영생의 비밀을 기록한 거대한 예언서가 된다.
그리고 그 첫 단추를 바로 끼우는 순간,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수많은 성경의 비밀들이 하나씩 풀리기 시작할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생명나무는 정말 나무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창세기의 첫 번째 비밀을 더 깊이 살펴보겠다.
/저자 저서
본 글과 관련된 보다 깊은 연구 내용은 저자의 저서 『격암유록과 요한계시록의 평행우주』 『세계를 재해석하는 삼중주 철학 과학 종교』 교보문고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